‘선생님, 망쳤어요. 종이 다시 주시면 안돼요?’ 그리기나 만들기 시간에 한번쯤은 들었던 익숙한 소리일 것이다. 배고픈 사자는 이렇게 탄생했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내게 내민 종이는 가운데 부분이 움푹 파여 있었다. 새 종이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종종 잘못 그어진 선이나 잘못 잘라진 종이를 바꿔줘야만 작업을 계속하는 아이들이 있다. 괜찮다고 말해도 아이의 눈에 괜찮지 않다고 느끼면 아이는 그들의 불행을 새로운 종이로만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이의 불행을 맘 아파하는 선생님들은 서슴치 않고 새 종이로 아이의 마음을 달래고 달래진 아이의 마음이 남긴 멋진 작품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시간에 서툰 가위질로 망친 종이는 나와 이 사자를 한 번쯤 만들어 본 여러분들에게 값진 선물이 되었다.
나는 짓궂게도 아이가 망쳤다고 가지고 나온 종이의 움푹 파인 부분을 거침없이 더 크게 잘라냈고 놀란 듯 더 커진 아이의 눈은
‘지금, 이 선생님이 무슨 짓을 하시는 건가?’
라는 물음과 함께 이어질 꾸짖음에 대비하듯 잔뜩 움츠려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눈치 챈 나는 아이를 향해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얘도 나처럼 배가 고픈가 봐. 선생님도 배가 고파서 배가 쏙 들어 갔는데......’
4교시 수업을 막 시작한 터라 그랬는지, 이 말이 끝나자 정말 시장 끼가 느껴졌고 나와 아이들 모두 ‘아, 배고프다.’를 외치며 우리가 느끼는 배고픔의 크기만큼 사자 몸통의 가운데 부분을 잘라냈다. 이렇게 아이의 망친 몸통 덕분에 우리의 얼짱사자는 날씬한 허리 라인과 함께 멋진 꼬리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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