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Y-2. 2만원에 팔아버린 자존심
“순미야, 배고파”
“밥, 없어!”
1983년 어느날, 임신 6개월이 된 내가 토요일 오후 2부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온 것은 3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고 난 너무 배가 고팠다. 점심을 거른 채 4시간의 수업으로 지칠대로 지쳐 있던 나는 순간 화보다는 설움에 북받쳐 '무슨 소리냐'고 다구쳤다. 밖에서 온 종일 일하고 지쳐 들어 온 사람에게 뭐라도 먹을 수 있게 해줘야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순미는 소파에 기대 앉은 채 꿈적도 하지않았다. 집에는 밥도 쌀통에는 쌀도 없단다. 코끝이 매케했지만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지방에 근무하는 남편에게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가 거절당하긴 했어도 쌀 통에 쌀까지 바닥이 났을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뻔한 일이었지만 지갑과 주머니를 닥치는대로 뒤져보았다. 8천원 남짓의 돈을 찾았고 봉급날은 아직 2주 정도 더 있어야 했다.
‘어쩌지?’
‘2주간을 어찌 버티지?’
우선 급한대로 찹쌀 한 되를 샀다. 그런 상황에서도 쌀을 한 되만 사는 모습으로 가게 주인에게 조차 내 궁색함을 들켜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찹쌀은 조금씩도 사서 먹기도 하니까.... '
그 후 며칠 동안 세 살짜리 아들 녀석과 임산부였던 나, 그리고 순미는 찰밥과 김치로 끼니를 때웠다.그런데, 며칠 후
세상에 죽으라는 법이 없는 건지....
아님, 나의 자존심을 시험이라도 하려는 건지....
우리 반 M군의 할머니라는 분이 교실로 찾아 왔다. 그리고 그냥 돌아가시지 않으셨다.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서시는 할머니께서는 꼬깃꼬깃 반씩 두 번 접은 흰 봉투를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꺼내 내게 내미셨다.
그리고.......
고맙고 불행하게도 난 덥썩......
그야말로 덥썩 그 봉투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받아 쥐었다. 낚아채 듯......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지금 뭘 한 거야!
빈 교실에 숨어있듯 퇴근 시간이 훌쩍 넘기도록 혼자 앉아 해가 지고 교실과 복도, 운동장이 캄캄해 질 때까지 나는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빈 학교를 빠져나와 20여분을 걸어서 돌아오는 퇴근길에서도 내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덥썩 받았던 그 돈은 라면 값으로 지불 되었고, 그 2만원어치 라면은 내 생애 마지막으로 먹은 라면이 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라면을 먹지 않는다.
나의 자존심과 바꾼 내 생애 단 한 번의 촌지와 2만원어치 라면......